추리 소설의 특징은 무엇인가?
사건이 발생한다 -> 탐정 역할 캐릭터가 사건을 해결한다.
아주 큰 틀이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건이 해결 된다는 말은 대부분의 추리소설에서 문제가 해소 된다는 의미이다.
음, 다시 말해보자.
대부분의 고전적인 추리소설에서 사건 해결 = 문제 해소 이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을 단순 추리소설로 묶기에는 비약이 있을 수 있다.
오히려 미스터리 라고 묶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다른 추리소설들이 주로 살인, 절도, 협박 등의 수수께끼를 다룬다면,
요네자와의 소설은 그렇지는 않다.
주인공은 대부분의 소설에서 고등학생이다.
고전부 시리즈의 호타루, 사토시, 마야카, 지탄다(애니와 책의 번역이 다르다. 나는 지탄다라고 불러야할까 치탄다라고 불러야 할까)
소시민 시리즈의 오사나이, 고바토
책과 열쇠의 계절이나, 다른 소설들도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루는 주제가 다를 뿐이지, 전체적인 플롯은 벗어나지 않는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홈즈 처럼, 요네자와의 시리즈에도 소위 말하는 탐정 역할을 맏는 캐릭터가 명확히 들어난다.
(안녕, 요정은 조금 다르다, 고전부 시리즈에서는 호타루가 1황이고 사토시가 2황인 반면, 안녕, 요정에서는 다치아라이가 1황이고 주인공이 2황이다.)
그리고 여타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 탐정 역할의 캐릭터는 모르는 수수께끼나 사건들을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해결해내곤 한다.
....그러나
요네자와의 소설을 읽어봤다면, 다른 소설들과 같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딘가..다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히 배경이 학생이고, 해결하는 문제가 살인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확신이 없었다 해도, 읽어봤다면 어딘가 기시감은 느껴졌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서 말했듯, 대부분의 고전적인 추리소설에서 사건 해결 = 문제 해소 이다.
문제가 해소된다는 말은, 권선징악, 또는 해피엔딩으로 결말이 난다는 말이다.
셜록 홈즈도 일부의 소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소설이 문제를 해결하고 범인을 잡아 체포하는 결말로 끝이 난다.
그리고 적어도, 작중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독자의 의문이 해결되는 경우 또한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보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10명은 그냥 UN.Owen에 의해 죽었고, 수사는 진전되지 않을 것이며, 권선징악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추리를 피해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던 "10명중 살인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나온다.
그러나 요네자와의 소설은, 이러한 부분에서 다른 소설들과 다르다.
요네자와의 소설은, 미스터리가 풀려도 문제가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
이 문장을 보고만 있으면, 마치 모순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미스터리가 풀렸는데, 어떻게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안녕, 요정과 진실의 10m앞의 다치아라이를 보자.
안녕, 요정에서, 다치아라이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당연하지 추리 1황인데, 내가 보기엔 얘가 호타루보다 똑똑할지도 몰라)
친구들은 과거의 일기장을 회상하며 마야가 어디로 갔을지를 추리한다.
여기서 미스터리는 "마야는 어디로 갔는가" 이고, 문제는 "내전중인 유고슬라비아에서 마야는 살아있는가?" 이다.
결국 일기장과 마야의 대화에서, 단서를 찾고 소거를 한 끝에, 마야가 어디로 갔는지를 알게 된다.
그렇게 미스터리는 해결된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알아버린 기분이, 허탈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추리 끝에 남는 것이, 그런 것이다.
(호노부 개잔인하네 마야를 그렇게 매력적으로 만들어 놓고는...)
진실의 10m앞 에피소드중 [이름을 새기는 죽음]에피소드에서는, 노인의 죽음을 목격한 쇼타..아니 중딩 쿄스케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치아라이와 쿄스케의 조사 끝에, 노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또 그 외의 미스터리들 또한 풀린다.
(스포라서 이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기를 바란다, 괜히 작가를 하는게 아니다.)
미스터리가 풀리고도, 쿄스케의 죄책감은 해결되지 않는다.
쿄스케는 "혹시"를 가정하며 계속 죄책감을 떠안고 있다.
이 문제는 미스터리가 풀리며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치아라이의 말 한마디가 해결해준다.
(다치아라이 진짜 츤데레다. 개멋있음 ㅇㅇ)
이처럼, 미스터리가 풀렸지만, 오히려 뒷맛은 씁쓸한 점이, 요네자와 소설의 매력이다.
단순히 미스터리가 풀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은, 다른 소설들과 차별점을 주며 소설에 특색을 불어넣는 점 중 하나이다.
요네자와의 소설을 읽었을 때, 후련함보다는 찝찝함이나 아련함이 남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