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날개

작가 :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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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해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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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가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면 시지프 신화 부록에 이상을 적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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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2025.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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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날개"!
정말 명작이지만......
자꾸 교과서나 수능특강 같은 데서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만 나오기 때문에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을 모르거나,
그저 "의식의 흐름" 원툴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인터넷에 있는 이상빠돌이(비하의 의미는 없다.) 들은 이상 최애 소설을 물었을때 "날개"라고 답한다면 "가짜"라고 하기도 한다.

그 러 나 !

이런 온갖 음해에도 불구하고! 날개는 레전드GOAT 소설이다.
이는 표현 면에서도 물론이고, 주제와 메시지 면에서도 탁월성을 드러낸다.
괜히 이상을 두고 천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보통 "날개"가 문제로 나올 때,
대충 앞에 주인공이 아스피린 (실은 아달린) 약먹는 장면 한두개 넣고,
아니면 아내가 손님 맞는 장면 좀 넣고
그리고 중략 때리고,
항상 마지막은 주인공이 커피를 마시는 장면부터, 날자꾸나 까지로 끝이 난다.
이제는 너무 많이 봐서외울 지경이다...아스피린과 아달린....아내의 목이 번개같이 떨어지고...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다...회탁의 거리...금붕어...참 좋다...미스코시 백화점...인공 날개...

무슨 죠죠6부에 천국으로 향하는 단어 14개마냥 외우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 장면이 무슨 의미이고, 뭔 소린지, 어디가 표현이 좋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이 글에서는, 최애 철학자 카뮈를 데려와서 이상 칭찬하기(?)를 해볼것이다.


주의! 해석에 정답은 없으며, 이 글 또한 하나의 견해이다.

결론부터 말하겠다.(나는 결론부터 말하는 방식이 좋다, 꽤 맘에 든다.)

마지막 부분, 그러니까 갑자기 막 아스피린이니, 아달린이니, 유리가 끓니....
이 부분은 (자신의 안에서)모더니즘의 붕괴로 인해 주인공이 느끼는 부조리감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부조리란?

우선 부조리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부조리(absurd)란,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카뮈가 제시한 개념이다.
(정작 본인은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대부분 그의 철학은 이쪽으로 분류된다.)

부조리란,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갈망과, 세계가 아무런 의미를 주지 않는 침묵이 맞부딪힐 때 생겨나는 경험이다.

카뮈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세계"에서 의미를 찾고자 죽기살기로 노력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세계는 무심하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부조리감을 느끼게 된다.
카뮈는 이런 부조리감이 마치 무대 장치가 붕괴하는느낌이라고 비유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수능이 끝난 현수생의 마음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수능 안봄)
수능이 끝나면, 뭔가 게임 레벨업을 한 것 처럼, 업적을 달성한 것 처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말하기를, 뭔가 텅 빈것처럼, "어?"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감각이 부조리감과 조금 비슷해보인다.
(??? : 이해가 쏙쏙 되잖아 고3슝좍아)

미스코시 백화점과 모-던 보이

작중 나오는 미스코시 백화점에 대해서 조금 알아볼 필요가 있다.
미스코시 백화점은 그당시 모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마지막에 미스코시 백화점에 가는 것은, 이 작품이 모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단서가 된다고 생각한다.

미스코시 백화점은, 일제강점기 당시 1930년대 초기에 경성에 세워진 백화점이다.
그때 당시는 일장기가 꽃힌 조선 땅에 모던 열풍이 불었다.
여기서 우리는 모던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모던은 보통 현대, 근대를 의미한다.
그때 당시 모-던이 그냥 그떄의 "현대"를 의미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때 당시의 시대상은 어땠을까?
일제강짐기는, 분명 한국인에게는 끔찍한 시간이였겠지만, 1920년대 일본이 문화통치를 하기 시작하며, 폭력은 점점 없어지는 추세였다.
그 대신 일본은 새로운 문물로, 즉 모-던 함으로 조선의 신념을 깎으려 했다.
모-던함은 표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일단 화려했다! 미스코시 백화점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그리고 편리했다. 도시를 달리는 전차들은 말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멋졌다. 과거의 낡은 유교나 상투는 버리고, 멋드러진 코트, 양복과 모-던한 구두, 그리고 콧수염...

이는 조선의 관점 뿐만 아니라 서양의 관점에서도 그랬다.
산업혁명이 시작하며, 낡은 봉건제 시스템은 날라가고, 철도가 이곳 저곳에 깔렸다.
사람들은 타락한 성직자의 말을 더이상 듣지 않았다, 뭐하러 그런 비합리적인 말을 믿는가?
사람들은 과학을 찾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신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스코시 백화점은 이러한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돈이 없는 자는 혼부라당이 되어 겉멋에 심취하고, 돈 있는 사람들은 과소비에 빠져들었다.
백화점의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소비문화의 모순이 감춰져 있던 것이다.

이러한 모던이 이상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끓는 지폐, 동전과 부조리, 아스피린아달린아스피린아달린....

주인공이 집에서 뛰쳐 나오기 전, 이야기가 기-승-전-결 에서 전 쯤에 있을 때, 주인공은 아내가 나에게 먹이던 것이 실은 아스피린이 아닌 아달린(수면제)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다.

이쯤에서 질문을 해보자.
모던좋을까?
...뭐 좋아 보인다!
우선 엄청 편해졌고, 높은 건물들과, 멋드러진 양복과...이제는 감기가 걸렸을 때 아스피린 몇 알만 먹으면 될것이다...들어오는 서양 문물들...

그러나 적어도 이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카뮈를 다시 데려오자.
모던은, 적어도 세계 자체는 인간이 바라는 의미에 응답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한다.
모던이 만드는 세계는, 인간이 편하길 바라는 의도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그 의도가 세계의 의미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세계는 침묵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부조리가 발생한다.

주인공을 살펴보자.
주인공은 처음에 모던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편이다.
밖에 돈을 들고 즐겁게 나가, 골덴 양복을 입고, 커-피를 마시고....
매춘부의 기둥서방이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주인공은 이 시대의 모-던 보이라고 할 수도 있다.
주인공은 감기에 걸리고, 아내가 주는 약을 받아먹는다, 맛이 씁쓸한게, 아마 아스피린이지 싶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아스피린이 아닌, 수면제 아달린이였다.
이 부분에서 주인공은 일차 대가리 깨짐이 온다.
분명 주인공에게 모던은 좋은 것이였다.
그러나 이 모던이, 나를 낫게 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나를 그저 무력하게 잠들만 하고 있었다.
이떄부터 주인공은 혼란스러워지지만, 한번의 기회를 원하게 된다.
아내에게 사죄한다면, 분명 해결될 거라고...
세계는 다시 좋은 의미를 찾을거라고...
돌아온 것은 아내의 화 뿐이었다.

주인공은 혼란스러워하며 거리를 거닌다.
여기서, 무대 장치가 붕괴하는 듯한 표현이 쓰인다. 앞에서 말했던 마지막 부분, 그 부분이 .내면에서는 좋다고만 생각했던 모더니즘의 붕괴로 인해 주인공이 느끼는 부조리감을 표현한 것이다.

+날자, 날자꾸나, 한 번만 더.....

사실 결말의 이 부분에서 카뮈가 이상을 좋게 볼지는 잘 모르겠다.
이 주제가 "부조리"자체가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할 뿐더러...
카뮈가 존나 깐깐하기 때문이다

시지프 신화나 반항하는 인간을 읽어본다면 알겠지만, 카뮈는 ㅈㄴ깐깐하다.

키르케고르 -> 부조리 개념은 충분함 ㅇㅈ, 근데 결론이 왜 신이냐? ㅗㅗ
야스퍼스 -> 부조리 개념 끝까지 못밀고 나감 쫄보새끼 ㅗㅗ
(심지어 좋아하는) 카프카 -> 님 작품에서도 부조리 나타나고 좋은데, 반항이 없어 반항이...
그나마 인정한게 돈 후안이나 이반 카라마조프...정도?

카뮈는 부조리의 해소, 즉 구원을 믿지 않았다.
카뮈에게 있어서 이는 곧 희망과도 같은 말이였다. 카뮈는 희망과 구원없이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왜냐면 부조리의 해소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뮈는 철학적 자살(구원에 기대기)를 진짜 극혐했다.
또 카뮈는 자살(진짜 자살)또한 부조리의 해소라기보다는, 인간과 세계 둘 중 한쪽 항을 억지로 소거시키는 것이지 부조리가 해소된다고는 보지 않았다.

마지막 날자, 날자꾸나가 자살이다 아니다로 해석이 갈리기도 하는 만큼 이 부분에 있어서는 확답을 하지는 못하겠다.
언젠가 확답을 할 수 있는, 혹은 적어도 자신만의 답을 낼 수 있는 문학도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적어도, 두 천재는 서로를 마음에 들어했을 것이다.

나는 가끔 한 카페를 상상한다.
카페의 건물주는 소크라테스고, 점주는 플라톤이겠지?
칸트는 정말 유능한, 그러나 절대 야근 안하는 알바생이였을거다.
그 카페에는, 카뮈와 이상, 사르트르가 같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커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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