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 이 책에서는 결론이 아닌 출발점인
인생 => 살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를 판단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중요
(일단 다른 철학 다 제껴봐, 이게 제일 중요해)
기존에 자살을 바라보는 관점은 자살을 사회현상으로 보았다.
카뮈는 개인과 자살의 관계에 대해, 그 속의 논리에 대해 보려 함.
자살을 생각함 => 침묵 속에서, 골병이 들듯이
자살을 시행함 => 보통은 고찰하고 자살X, 트리거 하나가 모든 것을 무너트림
(예외 : 중국혁명에서 정치적, 항의적 자살 등 몇가지)
카뮈가 생각할때 자살 = "삶이란 놈을 이해 못하겠어, 인생은 그닥 살만한게 아니구나" 라는 고백이다.
이때 내가 마치 이방인이 된 것 같이 느낌
if (자살):
is(부조리)detected = false
이게 맞으면, 우린 자살해야 함.
근데 이정도까지의 논리에 간 사람은
키릴로프, 페레그리소스, 쥘 르키에 정도
제외하면 없음
중간에 쇼펜하우어 한번 깜(쇼펜하우어 병신 ㅋㅋ)
스스로 죽음에 이를 정도의 논리가 존재하는가? = 부조리의 추론
2-1: 부조리의 발견
어느 길목에서나 부조리는 불쑥 튀어나옴.
길모퉁이를 돌다가,
회전문을 돌다가.
어느 끈이 툭 끊어지고, 다시 엮으려 해도 엮이지 않음
=> 부조리의 징후.
어느 날, 갑자기, "왜?" 가 나타나고, 일상은(무대장치는) 무너진다.
2-2: 부조리 종류
1: 시간의 부조리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스럽게 "미래"와 "내일"을 생각함.
내일..나중에...나이가 들면....
..죽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2: 낯섬의 부조리
시간 부조리 한단계 아래.
한 돌맹이가 우리에게 얼마나 닫혀 있는지.
세계의 낯섬, 두려움.
붕괴하는 무대장치
3 타자의 부조리(샤라웃 투 사르트르)
사르트르 - [구토]
4: 나의 부조리
3으로부터 발견
거울 안의 낯선 "나"
5: 죽음의 부조리
자신이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은 X
=> 죽음에서는 우리 모두 초짜 => 공포
죽음 = 필연
어떤 도덕, 가치, 노력도 정당성 X
6: 세계의 파열과 붕괴
이성이 깨어나면 => 세계는 무너지고
=> 인식이 무수한 조각으로 붕괴됨
=> 후회와 무력
(80페이지 정도에서도 고양이와 함께 이성에 대해 다시 언급)
2의 결론
이 "부조리"라는 놈은 우리 인생에 존나 큰 3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 장에서는 1번까지 다룬다. 근데 이 책의 핵심은 2번, 3번과, 그로부터의 귀결이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프롤로그였다는 소리임 ㅇㅇ)
여러가지 실존 철학은 도피를 권하기도 한다.
3-1 : 희망(신, 구원, 도피, 종교적임)
(카뮈가 개극혐)
야스퍼스(어떻게 사람이름이 X스X스)
: 부조리 인식 -> 무력함의 고백
...신 존재한다...?
카뮈 -> 야스퍼스 : 신 접근성이 낮을수록, 신성이 무용해지는데, 이게 오히려 현실성을 높인다고 함. 여기에는 논리가 없고, 그냥 비약임.
셰스토프
: 부조리 인식 -> 인간의 이성 ㅈ밥
But 이성 뒤에 "뭔가" 있음(신..? 뭐...)
카뮈 -> 셰스토프 : 아니 부조리 인식 잘했는데, 그걸 왜 자꾸 해결하려 들어, 이성 뒤에 뭐 없다니깐?
키르케고르(이 새끼도 결국 비약)
: 부조리 -> 절망 -> 치유받기를 원함 -> 신
카뮈 -> 키르케고르 : 그 당나귀씨, 장미는 그만 뜯으시고 절망(부조리)를 받아들이세요.
(근데 카뮈 은근 키르케고르 좋아하는 듯, 약간 츤데레끼가 있어.)
부조리는 인간 & 세계 둘 중 한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것임
=> 자꾸 "신"이나 "구원" 같은 치트키 꺼내지 마셈 ㅡㅡ
희망 = 철학적 자살
중간에 잠깐 현상학(후설)이랑 거리 둠.
카뮈 : 이성에는 한계가 았다.
3-2 : 자살(리버스 반항, 자살 != 반항)
자살에서 감정 걷어내고, 논리는 무엇인가?
철학적 자살은 이야기 했고, 그냥 자살은...?
반항은 좋은건데, 자살은 반항의 끝이 아님.(반항에 대해서 동시에 말하기에, 반항은 후설(그 후설 아님))
반항 : 희망이 없음
자살 : (해결된다는) 희망이 있음.
=> 자살은 지 나름대로 해결하긴 하는데, 이것도 치트키의 일종임. + 삶을 포기.
그러나 모든 모습이 달라졌다.
이제 죽을 것인가,
비약을 통해 문제를 모면할 것인가?
제 분수에 맞는 관념과 형상의 집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차라리 부조리의 비통하고도 멋들어진 내기를 지탱해나갈 것인가?
4-1 : 반항
부조리는 우리가 눈길을 돌릴 때 죽어버리는 것.
반항은 부조리를 확인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체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 반항만이 only 부조리를 다루는 데에 GOAT인 철학적 자세
반항 => 삶의 위대함을 회복시킨다.
죽을 "때"까지, 그 순간까지 포함해서 반항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반항은 구원 없이 살아가겠다는 자세이고, 이것이 유일한 자명함이다.
4-2 : 자유
인간은 본인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며 선택하며 살아가지만, 실은 그렇지 않음.
부조리는 우리에게 내일이 없다고 말해줌.
=> 이는 우리를 온갖 울타리 속으로 던짐. 자발적으로 동의한 노예 상태
그러나 내일이 없다 =>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허용됨.
죽기 전까지 모든 가치 판단은 엿 먹으라 그래.
4-3 : 열정
삶이 무의미하고, 모든 경험이 가치 없이 동등하다면
=> 최대한 많이 사는게 이득.
비유하자면,
서버가 섭종하는게 확정인데, 언제 섭종할지를 모른다면, 최대한 AP를 많이 써라.
AP 다 쓰는/쓰려는 사람들을 살펴보자
5-1 : 돈 후안
(필자는 돈후안 잘 모름;;)
그는 희망의 또다른 형태인 "후회"를 하지 않는다.
매 순간 AP를 불태운다.
5-2 : 연극
연극 주인공들은 두가지 의미에서 망함이 확정
=> 배우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현재를 즐긴다.
5-3 : 정복
정복자들은 "영"과 "미래"보다도 "육"과 "현재"를 중시하며
새로운 자신만의 규칙을 만든다.
또한 그들은 자신을 극복한다.(죠죠...?)
로한센세...
5-4 : 창조 (일종의 자기검증 아닐까)
예술(소설) => 의식한 것과 경험한 것을 묘사한다.
근데 이 과정 자체가 부조리하다(칸트 물자체 개념과 비슷)
그렇다면, 부조리한 작품은 가능할까?
부조리가 소설에서도 지탱 가능한가?
창조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반항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단, 창조는 구원이 아니고, 창조 또한 반항의 태도이다.
자신의 창조물이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
망가질 것이라는 것도 알면서,
그것을 알면서도, 창조(반항)한다.
시지프 -> 신, 죽음 멸시, 삶에 대한 열정(그야 타나토스랑 ㅁㅊ 맞짱을 떳으니까)
바위 -> 부조리에 비유
형벌 -> 신들과 바위를 향한 반항
=> 우리는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스가 그 바위를 굴리는 것 자체에서 행복감을 얻는 모습을 그리지 않으면 안된다.
카프카 팬인 카뮈가 카프카 좋아 히히 하는 내용, 자신의 부조리 철학으로 카프카의 문학을 분석.
여기에 나온 카프카 나머지 작품들 읽어보면 이것도 추가로 작성해 보겠음